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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극의 절정,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문화/공연/강의

by 공연소개하는남자 2015. 11. 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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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극단, 나무시어터가 창작 초연으로 드림아트홀에서 올린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작품은  2014년 4월 9일(수) ~ 13일(일)까지 대전의 1호 소극장 드림아트홀의 무대에 올렸습니다

[내 마음 속 기억의 방 낯선 곳에서 홀로 선 나를 만나다 /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마지막 장면]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대체 무슨 내용일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 연극의 부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 속 기억의 방, 낯선 곳에서 홀로 선 나를 만나다'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 부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전의 소극장 연극은 이름모를 정감과 애착이 갑니다.

특히 대전의 소극장 연극의 참 맛은 바로  창작초연되는 연극을 만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연극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어둠의 텅빈 공간을 울리는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채웁니다.

바로 이때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 대준(이대준 역 / 성용수 분)이 전화를 받습니다.




그런데 경찰로부터 걸려 온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름모를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며 전화를 받습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오래전에 헤어진 아버지가 소매치기를 하다가 걸렸으니 와서 신원확인과 함께 

아버지를 데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 아버지를 데려가기는 커녕 짜증과 분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한 통의 전화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겠지요?




어쩔 수 없이 경찰서에 가서 아버지(남철 역 / 조중석 분)를 데려온 대준은 무언가 원망과 비아냥으로

아버지를 대합니다. 대체 이 부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모습을 보일까요?

아버지의 폭력일까요? 아니면 외도? 대체 왜 ??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원망,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 가슴아픈 감정을 서로를 향해 바라보는 눈빛에서 드러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인 대준은 큰 집을 만들었으나 그 큰 집엔 단 한 개의 방만이 있습니다.

집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방....

대준은 아버지 남철에게 아버지를 위한 방을 만들었다고 하자 

아버지는 고마워 하며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실 그 방은 아버지를 가두기 위한 방으로 만들었으니....





아버지 남철은 밖에서는 열 수 있으나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방, 그 방에 갇혀 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아버지...

아들 대준에게 왜 이러는지 이유도 묻지 않습니다.

그냥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을 뿐입니다.


그럼, 대준의 어머니는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궁금해 졌습니다.


이야기는 잠시 대준이의 어릴 적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이 어릴적 이야기를 통해 대준이 겪었던, 그리고 대준의 아버지가 겪었던 끔직한 과거의 기억을 드러냅니다.




대준은 곱사등이로 태어나 친구로부터 놀림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대준의 어머니(남명옥 분)는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대준은 사막에서 사는 인내의 동물, "낙타"라며 아들에게 말합니다.

그렇게 대준은 자신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 안에서 모든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런 대준을 품에 품고 한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안타까움일까요?


미안함일까요?


대준 어머니의 이름모를 슬픔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대준이 아버지와 함께 받아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준의 어머니는 빨간 구두를 신고 장을 보러 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불길해 집니다.

아니나다를까, 갑자기 비보가 날아듭니다.

대준의 어머니가 목을 메고 자살을 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연극의 초반에서는 그 이유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극이 진행되면서 대준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아버지의 대사를 통해 드러냅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준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지금의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대준이 바로 초로기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하지만 대준은 자신이 초로기 치매에 걸린 것을 알지 못합니다.

결국 아버지가 대준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연극은 다시 대준이의 어머니, 남철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돌아갑니다.



아내를 잃은 남철(대준의 아버지)는 술집여자(지선경 분)을 통해 

그 슬픔을 잊어보려 하며 그렇게 술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슬픔을 잊기 위해...

그렇게 아픔을 잊고 싶어서 말입니다.




잠시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이 가정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대준은 받아쓰기를 하고 그런 기특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평범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대준의 어머니는 갑자기 비탄해 하며 대준이가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바로 우울증인 것입니다.

대준의 아버지, 남철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보듬어 주기만 했던 것입니다.


남철은 뒤늦게 아내의 우울증을 몰랐던 자신의 무지함에 애통해 합니다.

그렇게 아내를 떠나보낸 남철은 그렇게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감정이 남철을 사로잡습니다.

바로 원망감입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그렇게 우울증에 걸려 

빨간 구두를 신고 저 먼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 곱사등이로 태어난 대준이 때문이라는 원망감...

슬픔의 감정이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변해지는 순간

그렇게 따뜻했던 아버지는 무서움의 대상으로, 원망의 대상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남철은 자신의 곱사등이 아들을 창피해하며 


작은 골방에 가두고 폭행을 하며 자신의 슬픔을 잊어보려, 자신의 죄책감을 떨쳐버리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서로에게 아픔만을 줄 뿐입니다.



시간은 흘러...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초로기 치매에 걸린 아들 대준은 잠시 정신이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드러냅니다.

초로기 치매에 걸린 대준은 흡사 이중인격을 가진 지킬과 하이드처럼 

자신의 감정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을 잃어버리며,

지금의 자신을 잊어버리며...

다시 치매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초로기 치매가 점점 심해지면서 근육도 이상이 오게 됩니다.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남철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를 합니다.

자신이 결국 대준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또 다시 그를 엄습합니다.

그 옛날에 자신의 아내를 떠나보내며 그가 겪었을 그 무거운 죄책감의 무게가 말입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신이 겪었던 절망과 아픔을 아들에게 설명하기보다는

기억을 잃은 아들을 앞에 두고 독백으로 내뱉습니다.





또 잠시 정신을 차린 대준은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그런데 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남철의 대사를 눈여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린 대준에게 급박한 마음으로 사죄를 하기 시작합니다.

대준이 기억을 잃기 전에 어릴 적 대준에게 했던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그 이야기에 남철은 원망과 미움, 그리고 애절함의 감정을 최고조로 드러냅니다. 

아버지의 애절함과 아들의 애절함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 부자의 안타까움을 품어주기를 요구합니다.





남철의 눈물...

이 눈물....

아내를 잃은 슬픔의 눈물이며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죄책감을 폭력으로 휘둘렀던 후회감의 눈물이요,

그런 아들이 초로기 치매에 걸려 이렇게 무너져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리라...




타투이스트(남명옥 분)가 연극 초반부터 번갈아 등장을 합니다.

왜 타투이스트가 등장했을까?

그리고 이 여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의 답은 연극의 끝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죽은 대준의 어머니와 닮은 타투이스트를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것 처럼 자신의 등을 만져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간 타투이스트에게 등 마사지만 시켰던 이유를 관객들에게 드러내줍니다.

그간 타투를 하지는 않고 그저 마사지만 시키던 대준과의 약속했던 마지막 만남이 끝나기 전에

이 타투이스트는 대준의 등에 문신을 새겨주고 싶어합니다.

무엇을 새겨달라고 했을까요?

아니, 무엇을 새겼을까요?






빨간 구두를 신고 자신을 떠나가는 어머니와 타투이스트가 오버랩되며

연극은 타투이스트와 대준의 어머니와의 연관성을 확인해 줍니다.


자신의 슬픔과 함께 곱사등이 자신의 아들 대준을 품던 그 어머니는

그렇게 빨간 구두를 신고는 

그 죄책감의 무게를 벗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슬픔과 아픔을, 그리고 희망을 하나로 묶어 놓습니다.

위에서 쏟아지는 모래가 땅에 모여 산을 이룹니다.

마치 낙타 등처럼 봉긋한 산을....



             


대준의 곱사등에 타투이스트가 새겨놓고 간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떠날 때 신고 갔던 그 빨간구두였습니다.

대준은 늘 그 어머니의 빨간구두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말했던 낙타 등 같은 모래의 산을 

어머니의 빨간 구두를 신고 넘어갑니다.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의 산을,

어머니를 잃은 아픔과 공허함의 산을,


그리고 초로기 치매에 걸려 잃어버렸던 낙타등과 같은 인내와 희망의 산을 넘어갑니다.






대준은 그 모래의 산봉오리 위에 어머니의 빨간 구두를 놓습니다.

그 산의 정상에,

자신의 절망와 아픔과 슬픔의 절정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원망, 슬픔의 기억을 말입니다.





처음에 보여드렸던 연극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대준의 촛점을 잃은 두 눈빛을 통해 연극은 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요?


[연극의 원작자 정미진 작가]

"따스한 봄날에 꺼내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 한 구석에 작은 기억의 방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출 정우순]

"낙타가 삭막한 사막에 살 듯 우리들 삶 또한, 아프고 힘겨움의 연속입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찾기 위해, 사랑을 찾기 위해, 치유를 위해,

서로의 위로와 나눔으로 오늘도 내일도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아무도 모르는 미래로 우리는 다가서고 있습니다."


[연출 남명옥]

"폭력에 대한 기억으로 사랑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한 사람,

그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떠 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조차 더듬어가며

도덕적 요구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를 응원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현실에서는 부정하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오직 자신만이 연민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연민은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비극이다.

.......

그가 불러내는 기억은 현실과 과거, 환영까지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고통스럽게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 

그 소리가 자꾸 들린다.

사랑해 달라고....."








낙타등 같은 곱사등이 대준의 모래 언덕 위에 놓여있는 엄마의 빨간구두...

자칫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은 하나의 소품이지만

이 연극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명옥 연출의 글에 있던 것 처럼 '그가 불러내는 기억은 현실과 과거, 환영까지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고통스럽게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 자꾸 그 소리가 자꾸 들린다. 사랑해 달라고...'



대준이 자신의 곱사등이 위에 새겨 놓은 엄마의 빨간 구두는,

이 모래 언덕위에 놓은 엄마의 빨간 구두는

자신의 슬픔에서, 자신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바로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은 아닐런지...



연극은 우리에게 이 비극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콩가루 같은 우리의 가정이 얼마나 사랑이 가득한 곳인지...

우리가 허비하며 버리는 기억의 단편들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이는 사막, 인생이 사막일 수도 있어. 

견뎌야 하는데...제발..."


거친 사막에서 살아가는 낙타처럼 우리도 그렇게 인내하며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극단 나무시어터의 2014 창작초연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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