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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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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연소개하는남자 2010. 4. 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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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였다. 4.19혁명...
1960년 4월 19일, 그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독재와 억압에 항거한 시민들의 혁명, 자유에 대한 갈망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어제는 이 나라의 소위 대통령이라는 '분'의 연설이 있었다.
눈물의 장면에서 TV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정말 그렇게 울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군 통수권자로서 겪어야 할 아픔이었을까?
기득권에 대한 수호를 위한 눈물이었을까?

조선시대 당쟁사에서 읽은 문구가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다.



조선시대 당쟁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1년에 1.6명꼴이다. 
우리 선조들은 당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당의'라는 말을 썼단다.
당의의 기본원리는 '상대방의 존재와 비판에 대한 인정'이다.

당의가 가장 치열했던 숙종시절 백성은 가장 살기 좋았단다.
왜냐하면 숙적이 눈에 불을 켜고 잘못을 지켜보고 있으니 잘못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17세기 중엽이 넘어가며 정의와 공익, 공론을 위하던 당의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변질되었다.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서...

<조선시대 당쟁사 요약>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지도력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과거 4.19의 모습이 그러하다.
자신의 잘못을 포장하고 변명하며, 그것을 이해시키며 눈물이라는 저급한 Pathos로 다가간다면
잠깐의 설득은 할 수 있겠으나 실상은 그러하지 못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기에 포기할 것이 두려워 하는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상대를 숙청했던 17세기 당의의 모습이 오늘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오늘 인터넷 기사에는 '대통령마저 외면한 금양호 98호 선원'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들 또한 이 시대가 낳은 역사의 비극일진정,
이들을 위한 눈물과 역사의 비극에 대한 눈물은 어디로 갔는가?

   "민중은 무지하다. 
    그러므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들의 기억에서 속히 사라질 것이다."

혹시 이런 시대적 착오를 갖고 언론을 장악하는 자는 결국 그 언론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다.

역사가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괴벨스처럼 '1%의 진실과 99%의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한다면
얼만큼은 효과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의 결국은 그러하지 못하다.





1960년 4월 19일, 그 날의 함성과 열기는 오늘날 사그러지고 없다.
개인주의라는 시대적 유행을 따라 살아가고 있으니....
4.19가 무슨 날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답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역사'를 선택으로 바꾸는 교육이야말로 민중을 무지로 이끄려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자는 그 역사를 반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양심은 경제인의 왈력에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현실이 시대적 유행이라면 나는 그 유행을 과감히 버리겠다.

1905년 11월 20일, 그 날의 시일야방성대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장지연 선생의 슬픔의 글은 마치 성서의 예레미야의 애가(슬픈노래)와 다를바가 없다.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시일야 방성대곡 한글 번역문>


시일야 방성대곡,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리라'

구구절절 애절함과 애통함이 묻어나는 장지연 선생의 글이 작금의 시대에 병행댓구로 자꾸 생각이 날까?
쇠고기 촛불집회부터 시작해서 천안함의 슬픔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그 날의 슬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 더욱 슬프다.

그 날에 그렇게 사라져 간 그들의 피흘림의 자취가 
오늘의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길 바래본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는 없겠으나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는 자가 없는 현실이 나를 더욱 술푸게 한다.


[덜뜨기의 마음으로 담는 세상=허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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