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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사진첩

  • <할아버지 사진첩 6화> 마포급식소(19581026-19640625) 이야기

    2015.02.02 by 공연소개하는남자

  • 할아버지 사진첩을 넘기며(4화) - 전쟁 속에서도 지켜야 할 동심

    2014.11.14 by 공연소개하는남자

  • 1936년, 소년들에게 나팔과 삽, 빗자루를 주다

    2014.10.28 by 공연소개하는남자

  • 1929년, 산골짜기 동네에서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하다.

    2014.10.24 by 공연소개하는남자

  • 할아버지의 사진첩을 펼치며 (1회)

    2014.10.11 by 공연소개하는남자

<할아버지 사진첩 6화> 마포급식소(19581026-19640625) 이야기

[전국유일의 아침식사 배식처, 구세군 마포급식소 이야기] 지난 5화는 구세군대전혜생원(1955년 3월 29일~1957년 9월 27일)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번 6화에서는 대전혜생원을 떠나 경주(1957년 9월 27일~1958년 10월 26일)로 가셨다가 2년 후 서울의 구세군 마포교회(1958년 10월 26일~1964년 6월 25일)에서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구세군 마포교회 급식소 배식 장면] 조부의 사진첩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사진이 있는 구세군마포교회(3대 목회자)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당시 서울의 마포는 어렵기로 소문난 지역 중 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포에 구세군 급식소를 설치하여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세군에서는 총 7군데의 급식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는데, 조..

About me.. 2015. 2. 2. 21:48

할아버지 사진첩을 넘기며(4화) - 전쟁 속에서도 지켜야 할 동심

- 절망 속에서 지켜야 할 동심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 1950년대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조부께서 전쟁 발발 직후 개성에서 피난 민 500명을 구호해 주고, 서울 후생학원 215명의 고아를 수용 중 서울까지 처들어 온 공산당을 피해 피난을 가야 했지만,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여겨 버리고 피난을 갈 수 없어 결국 아이들을 모아 놓고 유언을 하셨습니다. "애들아 나는 너희들을 버려두고 차마 어디로든 갈 수가 없다. 공산군이 오면 우리 내외는 죽일 것이다. 난 여기서 죽을 결심을 했다. 내가 죽거든 뒷산에 묻고, 내 아들 딸은 원장 자식이라 하지 말고 같이 살아라. 공산군은 고아는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유언을 하셨는데, 그 중에는 구세군 사관(목사) 자녀 7명도 함께 보호를 하고 있었는..

About me.. 2014. 11. 14. 15:20

1936년, 소년들에게 나팔과 삽, 빗자루를 주다

조부께서는 사부동(1931년)을 떠나 낙평(1932년), 영덕(1934년)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1935년에 포항으로 목회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구세군은 현재에도 군대처럼 발령을 받아 목회지를 옮기는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조선 총독부에서는 구세군을 영국 군대로 이해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을 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단의 목회자들과는 달리 구세군 사관(목사)의 발령에 대해서만 조선총독부 관보에 기재를 하였습니다. 덕분에 일제치하에서의 구세군 사관의 발령 기록은 구세군의 기록보다 더 정확하다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습니다. 구세군 포항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1935년 이후 1년 반 동안에 280명이 회개를 하였다는 놀라운 기록을 발견하였는데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기록의..

About me.. 2014. 10. 28. 14:40

1929년, 산골짜기 동네에서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하다.

사부동 교회(경북 의성군 봉양면 사부동) 현재 노매실 교회 (1929년 초임 – 1931.6.27.) 구세군 사부동 교회(경북 의성군 봉양면 사부동)는 조부께서 1929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후 처음 발령받아 목회를 시작한 곳입니다. 이 사부동은 가구수가 총 47호였는데, 조부께서 목회를 하는 3년 동안 46호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구세군 사부동 교회는 1911년 3월 9일에 처음 개척을 한 곳으로 낡고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조부의 목회 이전부터 영문 건축목적 헌금 400원(당시 소 한 마리 3원)을 모아온 헌금을 11명의 개인이 개인들의 친목자금이라 주장하여 그간 건축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조부께서 대화로 해결하여 400원의 헌금을 다시 회수하여 당시 최신식의 건물로 건..

About me.. 2014. 10. 24. 15:19

할아버지의 사진첩을 펼치며 (1회)

할아버지의 사진첩을 펼치며 (1회)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것” [1928년 10월, 조부의 구세군사관학교 입학식 사진(광화문 정동)] 15년 전 큰 아버지의 소천 후, 제 부친에게 전해온 2권의 사진첩이 부친의 방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그 사진첩의 존재를 알게 되어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오래된 사진첩의 첫 장의 사진인 86년 전 조부의 구세군 사관학교(신학교) 입학식 모습은 제게 경외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제 조부, 허원조 사관(목사)은 1902년 5월 8일 경남 고성군 대가면 유흥리에서 제 증조부 허정현(1873년 10월 20일)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1928년 10월, 구세군 사관학교 19회로 입학을 하였습니다. 바로 그 해, 다들 아시는 구세군 자선냄비기 처음 시작..

About me.. 2014. 10. 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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